916일 수요일(49일차)

 

8월 말경에 연하검사 1단계를 성공하고 1주 후에 2단계를 성공하여 토로미를 섞어서 먹다가 92주째에는 밥을 먹게 되었음. 그러나 밥을 먹었는데 입맛이 없어서 15일에 입맛이 도는 약을 먹었음. 약을 먹어도 입맛은 빨리 돌아오지 않았고 16일에 토함.(입맛이 돌라는 약이 엄마는 속을 메슥거리게 했다고 하는데 지금에서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함-억지로 기능을 올리려는 것이 위를 무리하게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듦) 그래서 16일에 의사가 대장내시경 검사를 할 때 먹는 약을 먹어서 대장을 비워보자고 변이 꽉 차서 죽는 사람도 있다고 엄마를 설득함(엄마는 대장내시경 검사를 할 때 먹는 약을 대장내시경을 하자고 한 줄로 알고 있었음)

 

917일 목요일(50일차)

 

금식 시작 213시경 콧줄을 껴서 콧줄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검사 후 4시경부터 대장내시경 약을 투여함. 그 후로 엄마는 계속 속이 메슥거리고 토하기 시작함. 계속 토하여 10시경부터는 혈액이 섞여 나오는 갈색 물을 토함. 전공의 말로는 냄새도 나왔다고 함 100mL 정도라고 하지만 엄마가 화상통화로 보여줬을 때는 1는 되보임. 22일 새벽까지 계속 토하다가 오전에 항구토제 항암 환자들이 맞는다는 3만 원짜리 주사를 놓았음.

 

9월 22일(55일차)

 

항구토제는 잘 안 들어 스테로이드 약을 투여하자 구토는 멈추었으나 뱃멀미보다 심한 울렁거림이 계속 나서 엄마 엉엉 울고 힘들어함.

 

923, 24일(56, 57일차)

 

항구토제와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함

 

926일 토요일(59일차)

 

내가 갔을 때 식사를 하고 한약을 조금씩 다시 드시기 시작함. (9일 정도 약을 먹지 못함.)

 

927일 일요일(60일차)

 

한약을 1봉씩 먹기 시작함. 토요일 6시경 x-ray를 찍고 변이 많이 차서 또 속이 메슥거림이 있다고 하니 관장을 하였으나 많이 나오지 않았음. 그리고 많이 먹지 말라고 함. 돌팔이 의사. 원인이 대변은 아닌 듯싶다. 6시경에는 대변을 싸기 전에는 속이 메슥거림이 잠시 없었다가 속 메슥거림, 속 쓰림 약을 먹고 1030분부터 3시까지 잠을 자고 그 후로 계속 메슥거림으로 힘들어함. 양평으로 간다고 하니 메슥거림이 없다고 하였고 28일 새벽까지는 괜찮았다고 함. (한약도 엄마 위를 잠재우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음)

 

928일 월요일(61일차)

 

12시까지 양평 국립교통재활병원으로 전원을 하는 중 엄마가 다행히도 밤까지 속이 울렁거림이 없다고 하였음. 그리고 29일 병원에서 약을 주는 대로 약을 먹고 새벽 4시까지 잠을 주무셨다고 함. 대변을 아주 질펀하게 싸고도 모를 정도로 4번을 싸서 아빠가 힘들었다고 함. 항문이 대변이 나오는 느낌을 느낄 때가 있지만 아직 모를 때가 더 많음.

 

설정

트랙백

댓글

 엄마가 원주세브란스 병원에서 교통재활병원으로 가면서 아빠가 주로 간병을 하시고 계시다. 원주세브란스 병원에서는 5일은 간병이모님이 하시고 주말은 나와 아빠, 올케언니가 번갈아서 간병을 했다. 그러다가 교통재활병원은 간병인이 일주일마다 쉬지 못하게 하고 한 달에 2번정도만 쉬도록 했다. 코로나로 인해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빠가 코로나 검사를 받고 들어가셨다. 그 때는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 간병인을 쓰기도 애매했다. 추석이 지나 간병인을 쓰기로 하였는데 국립교통재활병원은 보호자외에 간병인이 95% 중국사람이라고 했다. 첫번째 중국사람은 거짓말을 하거나 환자와 간병인이 같이 식사를 하지 못하는데 반찬도 안 주고 혼자 다 먹는다고 어처구니 없는 말로 엄마를 모진사람으로 만들어서 그만두라고 했더니 엄마 이불까지 싸서 가져가 버렸고 두번째 중국 간병인은 엄마를 돌봐주지 않고 욕창도 잘 관리가 안되었다.

 

엄마는 그 때만해도 괄약근조절이나 배변의 기능이 돌아오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바닥에 흘려야 해서 자존감이 저 깊은 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빠가 엄마를 간병하게 되었다. 

 

그런데 워낙 엄마와 아빠가 티격태격하던 것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여전히 병원에서도 그렇게 하고 계셨다. 나는 아빠가 잠자리도 불편하고 자신의 시간도 없이 갇혀서 간병을 하시는 것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하여 너무나도 불편하였다. 그래서 엄마의 아빠에 대한 불만섞인 전화가 와도 아빠에게 뭐라고 할 수 가 없었다. 서로 알콩달콩 있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아파서 자신에게만 맞추라고 하고 아빠는 아빠대로 힘들고...

 

 

그렇게 아빠가 간병을 시작한 것이 언 4개월이 넘었다. 아빠가 쓰러질까봐 걱정이 되었는데 밤에 아파서 끙끙거리며 잠든 엄마를 보면 안쓰럽다고 말씀하셔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아빠에게 '힘내라고' 그리고 아빠가 힘들어서 전화할 때 들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설정

트랙백

댓글

 

8월 27일(29일 차)

 

엄마는 배가 아파서 3~4일 정도를 관장을 하루에 4번 정도를 하다시피 하고 잠도 못 주무시고 '갔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였다. (앞으로 이 말을 하는 고비가 계속 올 줄이야) 간병 이모님이 나와 통화를 하면서 엄마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셨다. 그래서 나도 같이 잠도 못 자고 집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와 통화를 하며 전화통을 붙잡고 서로 엉엉 울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엄마 힘내, 엄마 힘내...'

 

엄마는 8월 중순 쯤에 연하 검사를 했지만 삼킴이 어려워 통과를 하지 못하다가 27일에는 연하 검사 1단계를 성공하였다. 연하 검사를 하는 이유는 음식물이 기도나 폐로 흡인되어 폐렴이나 기도 막힘으로 인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삼킴이 가능한지를 검사를 해야 하며 2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렇게 아프고 나면 조금씩 회복이 되어 가는 과정을 겪고 있었다. 그중에 연하 검사 1단계를 통과하게 된 것이다.

 

 

9월 4일(37일 차)

 

엄마는 밀러피셔 증후군으로 한약을 2주째 드시자 오른쪽의 눈꺼풀이 감겼던 것이 눈이 조금 떠지고 눈동자도 조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하 검사 2단계를 성공하였다. 나는 연하 검사를 하게 되면 밥을 먹는 줄 알았더니 [토로미]라는 것을 죽, 물, 반찬 등 모든 음식에 넣어서 걸쭉하게 만들어서 기도로 넘어가지 않게 먹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너무 맛이 없다고 했지만 차차 입맛에 적응이 된다고 했다.

 

 

9월 11일(44일 차)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오늘은 간호사가 갑자기 엄마 눈동자를 돌려보라고 하더니 눈동자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보인다고 하면서 많이 좋아지고 있다'라고 했다며 좋아했다. 한약을 먹으면 좋아질 거라는 95%의 확신과 5%의 의심이 있었는데 100%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주치의는 저절로 좋아질 거라는 말을 계속했지만 한의사는 골든타임이 있다고 말했기에 그것을 놓치면 동공이 굳어지고 프리즘 안경을 써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약을 드시고 있다.

 

일주일 정도 토로미 섞은 죽을 드시더니 11일 부터는 밥을 드시게 되었다. 그런데 밥을 먹으면 기력도 회복이 되겠다 싶었는데 이제는 밥맛이 없는 게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15일부터 입맛이 도는 약을 먹었다. 이 약은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입맛이 없어서도 먹는 약이고 병원에서 입맛 돌아오게 처방받는 약이었다. 그런데 이 약을 먹고 다시 메쓱거림이 시작되고 엄마가 토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위의 기능을 올리려고 위를 무리하게 작용시킨 것은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설정

트랙백

댓글

엄마가 2020년 7월 10일에 발병하고 검색을 열심히 해서 정보만 얹고 있다가 4개월 뒤 우연히 희귀병 길랑바레증후군에 대한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정보도 얹고 위로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cafe.naver.com/guillainbarre

 

길랑바레 증후군 [Guillain B... : 네이버 카페

희귀병 길랑바레 신드롬(Guillain Barre Syndrome)에 관련한 지식이나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입니다.

cafe.naver.com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