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018년 7월경 초대장을 받았던 티스토리 시절 겨우 초대장 받아서 글 몇 개 올려서  2020년 11월에 다시 글을 조금씩 올렸다. 그러다가 시간이 없어서 2021년 1월 31일에 다시 글을 올려보려고 하니 지금까지 사용하던 계정에 로그인이 안되고 새로운 티스토리를 만들게만 해놨다.

 

그래서 검색을 통해 이것저것 설정을 통해 여러가지 방법도 해보고 고객센터에 로그인이 안된다고 문의를 3번이나 했는데 답변도 없다.

 

 

 

뭐 이런 것도 해 보고

 

 

이런 것도 해봤는데.....

 

 

결국 다시 티스토리를 만들어서 다시 글을 올리고 있다. 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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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수요일(27일 차)

 

아침에 비가 억수로 왔지만 그래 가자! 하여 병원에서 대기 중인 사설 구급차와 응급구조사와 함께 아산병원 응급실에 40분을 타고 도착을 하였다.

 

그런데 현재 아산병원은 코로나 환자에 대해 국가지정 치료병원이라 음압 병동이 다 찼으며 엄마가 폐렴 환자여서 받아줄 수 없다며 퇴짜를 해버렸다. 아산병원에서 임상심리사로 있던 사촌동생이 나와서 그 의사에게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무작정 오라는 사촌동생이 일을 다 처리해 놨는지 알고 갔지만 정말 어처구니없이 말뿐인 상황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엄마가 그냥 돌아가자고 해서 타고 왔던 사설 구급차를 타고 되돌아갔다. 가면서 다시 원주세브란스 병원의 신경과 간호사실에 전화를 하니 여기도 상급병원이니 다시 돌아올 때는 다른 상급병원으로 옮기게 될 수도 있다는 말 까지 하여서 가는 동안 불안했다.

 

원주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 도착을 하니 절차상의 문제로 6시간 동안 엄마를 기다리게 하였다. 엄마는 '집에 가자. 집에 가자'하고 하고 나는 무모한 이러한 결정으로 엄마만 고생시켜 '엄마 미안해'를 반복하며 엄마와 엉엉 울었다.

 

엄마는 다행히도 원래 있던 병실 그 침상 그대로 옮겨졌다. 우연히 전공의가 간호사실에 있는 것을 보고 아산병원에 가기 전 다시 돌아오더라도 엄마를 잘 치료해 달라고 부탁하며 갔는데 다시 돌아왔다. 엄마 치료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나왔다. "오늘 하루가 참 기네요. 저는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라고 하니 "네, 그래야 후회도 안 남아요. 저희는 저희가 할 일을 할게요. 걱정 마세요"라고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사람이란 정말 간사해서 엄마의 희귀병에 대한 미심쩍은 것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곳에 다시 오니 그동안 불만인 것이 사라졌다.

 

인성이 좋은 곳은 어느 곳이나 다 중요하다. 엄마가 중환자실에서 있던 일을 말해 주었는데 엄마를 시체처럼 놓고 "똑바로 잘 배워 지금 안 배우면 언제 배울 거야?"라고 하면서 인턴인지 레지던트인지들이 낄낄거리면서 웃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중환자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엄마가 직접 겪으니 정말 화가 났다. 그래서 오빠가 전공의에게 말했더니 인성까지는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교육은 시켜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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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토요일(23일 차) :  아산병원으로 전원 고려

 

원주세브란스병원이 강원도에 있고 현 주치의는 말초신경계, 길랑바레 증후군보다는 중추신경계, 뇌졸중 전문의라 그리고 생소한 희귀병이라 아산병원에 진료의사 중 말초신경계 의사를 찾아 진료를 받고 싶었다. 아무래도 서울에 명의가 있다는 고정관념도 있고 더 큰 병원으로 가고 싶다느 ㄴ생각으로 아산병원으로 옮기려고 가족들과 의논을 하였다. 그래서 주치의한테 의논을 하니 진료기록과  CD 등 준비는 해줄 테니 전원을 위한 전화는 안 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얼마나 쌍욕을 했던지...

 

 

아산 병원에서 임상병리사로 있는 이종사촌동생은 그냥 응급실을 통해서 오라고 그러면 하루 정도 응급실에 있다가 병실로 입원을 할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래서 병원사정을 아는 사촌동생의 말에 의심은 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족들은 가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8월 3일 월요일(25일차)

 

올해는 코로나와 긴긴 장마와 폭우로 강수량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기상이변의 해였다. 그날도 폭우가 내려서 옮길까 고민하고 있는데 오빠가 다음에 옮기자고 해서 연기를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아산병원의 응급실에서 새벽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 응급실 폐쇄로 이동하지 말라는 사촌동생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엄마를 이동시키면 고생만 했겠다는 생각에 비가 많이 온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러고 나서 8월 4일 다음날 아산병원 응급실은 하루 만에 재게를 하였다고 사촌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8월 4일 화요일(26일 차)

 

엄마를 간병하러 가는 날 올케언니와 통화 중 이왕 옮기려고 했던 거 응급실 재게도 했다니 옮기자고 결론을 내렸다. 밤새 옮겨야 하나 비도 이렇게 많이 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고민....고민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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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수요일(20일 차) : 엄마 폐렴 석션

 

엄마가 중환자실에서 나오면 나는 일상생활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길랑바레 증후군의 증상 중 40% 이상에서는 호흡근이 매우 약해져 일시적으로 기계호흡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엄마가 그랬다. 그래서 배의 힘이 없어서 가래를 뱉어내지 못하였다. 폐에 달라붙어 있는 가래를 떼내야 해서 석션을 하였는데 가래를 빼 주지 못하면 중환자실에 갈 수도 있거나 목구멍에 구멍을 내는 기도삽관으로 가래를 빼야 해서 가래 석션이 아주 중요했다.

 

 

간호사 한 명이 기다란 주황색 호수를 입아네 개구기로 넣어서 기계로 가래를 흡입하는 것을 알려 주었는데 호수를 깊숙이 넣는 기술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호수를 폐까지 넣어야 하는데 엄마가 고통스러워하여 잘못했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부탁을 했는데 원주세브란스병원의 82 병동 간호사들은 정말 친절하였고 특히 간호부장과 엄마 담당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회복을 위해 헌신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다.

 

엄마는 그나마 그 병실에서 가장 양호한 환자였다. 이 병실의 환자들은 주로 뇌졸중 환자들이었다. 엄마의 앞쪽에 있는 아가씨는 25살인테 뇌졸중으로 2년 동안 투병 중인데 엄마가 간병을 하고 있었고 아가씨 옆에 있는 분은 은행 지점장, 50대였는데 갑자기 쓰러졌다고 했다. 그 옆의 뇌졸중 할머니는 의식만 있었는데 잠만 주무시고 계셨다.

 

뇌졸중 환자들은 의식과 눈동자만 움직이고 있으며 목에 구멍을 내서 기도삽관을 하여 석션을 하였다. 그리고 예쁜 얼굴에 머리를 감겨주기가 힘드니 스포츠 머리로 잘랐다. 소리도 다 듣고 그랬는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에 안쓰럽기도 했다.

 

엄마는 중환자실에서부터 가래 석션을 하였는데 중환자실에서는 수면제로 석션하는데 힘듦을 잘 느낒 못하였는데 의식을 가지고 석션을 하는데 죽다 살아나 듯한 고통으로 석션을 계속했다. 하루에 10번 이상씩 한 달 이상을.... 엄마의 첫 번째 고통은 호흡곤란으로 중환자실에 있었던 것이고, 두 번째 고통은 가래 석션이었다. 그러면서 엄마는 '갔으면 좋겠어;라고 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엄마를 고통스럽게 석션을 하는 모습을 보고 집에 가야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에 오는데 너무 마음이 무겁고 슬펐다. 집 앞 몇 m를 걸어오는데 창피하게 마음이 북 바쳐 울음이 났다. 그런데 아이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데 울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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